" 내년에는 종이 상자만 가지고 운동회를 하고 싶어요! "
작년 운동회가 끝나고 평가를 할 때 였다.
평가란 새로운 준비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올해 운동회는 1년 전 준비 그대로 ' 종이 상자 운동회 '였다. 인복과 운도 따랐다. 아빠학교에서 종이박스배 만들기를 하며 300장이 넘는 종이박스를 아기스 학부모님으로 부터 기증받았다. 종이박스배 만들기만 하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상자였다. 그래서 아빠학교에서는 일부만 사용하고 운동회를 위해 한 달 넘게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 운동회 막판에는 작은 상자 500개도 기증 받았다.
광명에 있을 때 천 개가 넘는 상자를 기증 받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 종이 상자를 가지고 미로 나라를 만들었었다. 만드는데만 꼬박 이틀이 걸렸고 상자와 상자를 잇기 위해 사용한 박스 테잎만 두 박스가 들었다. 스케일이 얼마나 컸던지 잘 밤에는 행여 누군가 와서 부술까 청원경찰이 지키기도 했었다.
그 때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 것은 종이 상자 놀이에 대한 향수가 가시지 않은 탓이었던 것 같다.
광명에 줄다리기 줄을 빌리러 갔을 때 광명 YMCA 앞 천막집에 들렀다. 예전부터 안면이 있던 곳이라 아는 체를 해 주셨다. 천막집에는 천막을 쓰고 나면 버리는 천막심이 잔뜩 쌓여 있다. 두루마리 휴지 속에 휴지심이 있듯이 두루마리 천막 안에는 압축종이로 만든 단단하고 길다란 천막심이 있다. 하나 무게만도 대단해서 두 개 이상을 한 번에 들고 가기가 쉽지 않다. 그런 녀석을 10개나 공짜로 얻었다. 내심 종이 상자 박터뜨리기를 할 때 기둥으로 하고 싶은 마음이 있던 터였기에 그 기쁨은 이루 말로 헤아릴 수 없었다. 보통 박 터뜨리기는 두 개의 박을 준비하지만 이번에는 여덟 개의 박이 필요해서 박대도 여덟 개나 필요했다. 게다가 천막심은 운동회만 겨냥한 준비물이 아니었다. 종이 상자처럼 몸놀이 시간에도 지겹도록 쓰고도 남을 녀석이었기에 이 녀석을 열 개나 거저 얻었다는 것은 이만저만 행복한 일이 아니었다.
가장 먼저 종이 상자 세 개를 이어 공 굴리기 공을 만들었다. 사과 상자였다면 공 크기도 제법 커졌겠지만 이만한 것도 쏠쏠했다.
두번 째로 종이 상자 두 개와 뗏목 만들기 때 사용했던 막대 두 개를 이용해 종이 가마를 만들었다. 막대 역시 아기스 아버님께 기증받은 것이어서 적재적소에 딱 맞았다.
여덟 개의 박도 만들고 빨래줄을 엮어 종이 기차도 만들었다. 보기에는 쉬워 보여도 하나 하나 엮으려면 시간이 꽤나 걸린다. 마치 실과 바늘로 바느질을 하듯 대바늘로 줄을 꿰어 종이 상자들을 하나 둘 꿰야 하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아기스 모든 선생님들이 총출동해서 종이 상자를 엮어 나갔다.
운동회 준비를 마치고 집에 온 후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머리 속으로 운동회를 여러 번 그려 본다. 이런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이러한 과정에서 반드시 빠진 준비물이나 역할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선생님들과 함께 한 리허설까지 합친다면 족히 열 번은 넘게 운동회를 그려 보는 셈이다.
운동회 당일 정확히 일곱 시에 출근했다.
종이 상자를 싣기 위해 트럭이 오는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무겁지는 않지만 양이 많고 만들어 놓은 종이 상자는 행여 부숴질까 조심히 다뤄 시간을 꽤나 잡아 먹었다.
운동회 준비로 가장 마음이 급하고 긴장할 때가 바로 이때부터 운동회 시작 전까지다. 사전 준비가 아무리 꼼꼼해도 이 시간만큼은 늘 조급하다. 선생님들과 준비를 마치고 최종 리허셜을 마친 시간은 정확히 10시 10분!
이제 운동회를 치르기만 하면 되었다.
가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따갑다.
아기스 아이들과 학부모님 앞에 선 선생님들 위로 차양막이 있어 선생님들이 선 자리만 그늘이 진다. 그래서 엠프를 들고 햇볕으로 나선다.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은 햇볕 아래 섰는데 진행자랍시고 그늘 아래 있을 수는 없었다.
이것은 교사로 살아온 나름의 철칙이다.
아이들과 있을 때 아무리 눈 부신 여름이라도 아이들과의 눈마주침을 위해 썬글라스를 쓰지 않아야 하며 숙소와 식사를 제공하는 캠프를 갔을 때도 교사랍시고 다른 반찬 주는 것을 받지 않고 아이들과 같은 밥과 반찬을 먹어야 하고 아이들과 같은 곳에서 먹고 자야 한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이 별 것 아닌 것들로 인해 아이들 앞에 선 선생님으로 떳떳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운동회에서 가장 즐거워야 하는 것은 아이들이다. 그래서 볼거리, 즐길거리보다는 아이들이 놀거리가 많아야 한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은 운동회 연습을 전혀 하지 않는다. 아니 연습해야 하는 것은 아예 운동회에 들이지도 않는다. 또한 아이들 못지 않게 선생님도 즐거워야 한다. 이 두 가지만 충족되도 학부모님들은 충분히 즐겁고 재미 있을 수 있다.
운동회가 끝나고 나면 아이들과 또다시 우리들만의 운동회를 한다. 사전 연습은 없어도 운동회 이후 그 여운을 우리끼리 즐기는 사후 놀이는 충분히 준비한다.
이것이 정확히 딱 1년을 준비하는 우리식의 아기스포츠단 가족 운동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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