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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봉샘 인형극장

겨울 할아버지

1.

 

" 선생님! 아침에 눈 왔어요? "

 

" 아니? "

 

" 그런데, 왜 눈이 쌓여 있어요? "

 

" 으-응, 그건... 아침에 겨울 할아버지가 다녀 가셨기 때문이야! "

 

" 겨울 할아버지요? "

 

2.

 

아침입니다.

아침 참새가 기지개를 켭니다.

활짝 편 겨드랑이에서

으스스 추운 겨울 밤이 눈꼽마냥 떨어집니다.

톡- 톡-

밤 잠이 떨어지는 땅 위로

아직 잠이 덜 깬 배추들이

부시시 눈 비비며 하품을 합니다.

 

" 엉? 이게 뭐야? "

 

포동 포동 머리 위로 하얀 모자가 씌워져 있습니다.

 

옆 집 난쟁이 밀 친구도

아랫 집 통통 무우 친구도

건너 집 꽝꽝 보리 친구도

눈 처럼 하얀 모자 아래에서 잠을 깹니다.

 

" 밤 새 눈이 왔나? "

 

잎 파리 속속 하얀 눈을 털어내며

아침부터 부산스런 배추입니다.

 

" 눈이 아니야! "

 

요리조리 나뭇가지를 뛰어 다니며 참새가 말합니다.

 

" 눈이 아니면 뭔데? "

 

건너 집 꽝꽝 보리가 기지개를 켜며 말합니다.

 

" 겨울 할아버지가 다녀가셨어! "

 

" 겨울 할아버지? "

 

3.

 

별도 달도 잠 든 깊은 밤

바람마저 숨어버린 깊고 깊은 저녁에

골목을 돌아돌아 메아리치는 잠꼬대 같은 목소리

 

" 찹살∼떠∼억, 매밀∼묵! "

 

잠꼬대 잘∼하는 한 녀석이

대문 앞 친구가 부르는 듯 귀가 솔깃하여 잠을 깹니다.

 

" 찹살∼떠∼억, 매밀∼묵! "

 

" 어? 찹살 떡 아저씨다. 선생님! 선생님! "

 

" 아-웅∼ 왜 그래, 달봉아∼ "

 

" 찹살 떡 사래요. 찹살 떡! "

 

" 뭐? "

 

꼭두새벽 호두 깨는 소리 같은 달봉이 목소리에

고개만 삐죽 들어 귀를 깨우는 선생님.

 

" 찹살∼떠∼억, 매밀∼묵! "

 

" 봐요! 찹살 떡 사라고 하잖아요 "

 

" 아니야! 달봉아! 안 사고 싶으면 안 사도 돼. 잠이나 자 자 "

 

머리꼭지까지 이불을 끌어올립니다.

 

" 아이∼ 선생님! 찹살 떡 먹고 싶단 말이에요. 네? 찹살 떡 사 주세요. 네? "

 

" 달봉아∼ 선생님은 잠을 먹고 싶어. "

 

끙∼

팔 베고 돌아눕는 선생님 귓가에 달봉이 애원하는 목소리가

꿈나라 가는 길에 돌부리가 됩니다.

 

" 찹살∼떠∼억, 매밀∼묵! "

 

" 아∼이, 선생님! 찹살 떡 어저씨 가 버리면 어떻해요? 어서요. 어서요∼ "

 

곱게 덮은 선생님 이불을 휘-익∼ 걷어 버리는 달봉이 녀석입니다.

물 밖에 나온 새우 마냥, 지팡이 잃은 할아버지 마냥

이불 없는 선생님은 허리가 기웁니다.

 

" 달봉아∼ "

 

" 선생님∼ 제발요. 찹살 떡 사 주세요. 네? "

 

" 도대체 지금 몇 시냐? "

 

고개를 갸우뚱, 뻐꾸기 시계를 바라보는 달봉이.

 

" 나... 시계 볼 줄 모르는데∼ "

 

" 선생님! 왜 그래요? "

 

새근새근 곤한 잠을 자던 삼룡이가 눈 비비고 일어납니다.

 

" 이 녀석아! 삼룡이까지 깼잖아! "

 

" 어서요∼ 네∼?, 사 줘요∼ 네∼? "

 

" 형아가 뭘 사 달라고 그러는 거에요? 선생님? "

 

" 찹살 떡을 사 달란다! "

 

시계를 바라봅니다.

 

" 새벽 다섯 시에 말야. 다섯 시에! "

 

오리 입을 하고 앉은 달봉이.

졸린 눈을 하고 앉은 삼룡이.

선생님 두 입술이 떨어질 줄 모릅니다.

삼룡이가 입을 벌려 하품을 합니다.

 

" 찹살∼떠∼억, 매밀∼묵! "

 

하품을 하던 삼룡이 두 눈이 번쩍 떠집니다.

오리 입을 하던 달봉이 두 눈이 번쩍 떠집니다.

떨어질 줄 모르던 선생님 두 입술이 천천히 떨어집니다.

 

" 알았다! 알았어. 금방 사 가지고 와야 한다. 알았지? "

 

" 네! 알았습니다! "

 

신바람이 난 달봉이.

선생님 손에서 낚아채듯 돈을 받아들고

호들갑스럽게 뛰어 나갑니다.

 

" 삼룡아! 우리는 달봉이 올 때까지 조금만 누워있자. 아이구∼ 추워라∼ "

 

" 네∼ 선생님∼ "

 

쿨∼ 쿨∼

 

잠깐만 누워 있으려고 한 것인데 눕자 마자 잠이 듭니다.

얼마나 잤을까...

두 눈이 갑자기 번쩍 떠집니다.

 

" 응? 달봉이 들어왔나? "

 

고개 들어 돌아보니 달봉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 뻐꾹 뻐꾹 뻐꾹 뻐꾹 뻐꾹 뻐꾹! "

 

여섯 시를 알리는 뻐꾸기 시계소리.

 

" 어! 한 시간이나 지났는데... 이 녀석이 어디갔지? "

 

주섬주섬 옷을 입고 밖으로 나옵니다.

거실에도 화장실에도 어디에도 달봉이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 어∼? "

 

" 선생님∼ 왜 그러세요? "

 

선생님 허둥거리는 소리에 삼룡이가 잠을 깹니다.

 

" 달봉이가 아직 안 들어왔나 봐. "

 

서둘러 외투를 입습니다.

 

" 선생님! 저도 같이 갈 께요. "

 

" 그래 "

 

현관문을 엽니다.

문 밖을 서성이던 겨울바람이 휘익∼ 얼굴을 스칩니다.

 

" 아이구∼ 추워라. 이렇게 추운데 이 녀석이 도대체 어딜 간 거야∼ "

 

깜깜한 새벽, 골목 어귀 가로등마저 얼어붙은 것 같습니다.

 

" 찹살∼떠∼억, 매밀∼묵! "

 

" 어! 선생님! 찹살 떡 아저씨에요. "

 

다급한 마음에 찹살 떡 아저씨를 부릅니다.

 

" 저기... 혹시 아까 다섯 시쯤에 꼬마 녀석 하나가 찹살 떡 사지 않았나요? "

 

" 아∼ 그 꼬마 녀석이요? 굉장히 씩씩하던데요? 흐흐 "

 

" 혹시 그 녀석이 찹살 떡 사 가지고 어느쪽으로 갔는지 기억나세요? "

 

" 아, 그럼요. 기억나고 말구요. 저쪽 놀이터 쪽으로 뛰어 가던데요? "

 

" 놀이터 쪽이요? "

 

놀이터로 향합니다.

이 녀석이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 선생님! 형아가 놀이터 왜 갔을까요? "

 

" 글쎄다.. 혹시, 이 녀석이? "

 

" 왜요? "

 

" 아니야. 그럴리 없지. "

 

꼬옥 잡은 삼룡이 손을 다시 잡으며 발길을 더욱 서두릅니다.

놀이터에 가까워질수록 아이의 울음소리 같은 소리가 들립니다.

 

" 어? 선생님! 이 소리는 달봉이 형아 우는 소리같은데요? "

 

" 그렇지? 너도 그렇게 들리지? "

 

놀이터 한 귀퉁이

삐걱 삐걱 바람에 울고 있는 그네 옆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달봉이 모습이 보입니다.

 

" 달봉아! "

 

" 형아! "

 

삼룡이와 선생님을 번갈아 쳐다보는 달봉이.

울음소리가 더욱 커집니다.

 

"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일이야? "

 

" 형아∼ 왜 그래?"

 

울음이 그칠 줄 모르는 달봉이입니다.

 

4.

 

" 아저씨! 찹살 떡 주세요! "

 

" 아이구∼ 꼬마 손님이네∼ 그래, 얼마만큼 줄까? "

 

신이 난 달봉이 손에 쥔 돈을 내밉니다.

 

" 이 만큼 주세요. "

 

" 아이구∼ 이렇게나 많이? "

 

" 이 만큼이면 찹살 떡 몇 개나 살 수 있어요? "

 

" 음... 오늘 첫 손님이니까... 어디... 음... 삼십 개는 살 수 있겠다. "

 

" 삼십 개라구요? "

 

좋아서 발을 동동 구르는 달봉이입니다.

신이 나서 폴짝 폴짝 뛰는 달봉이입니다.

 

" 어서 주세요. 어서요, 아저씨! "

 

" 그래. 알았다. 알았어. "

 

달봉이 두 손에 찹살 떡 서른 개가 든 봉투가 건네 집니다.

 

" 우와∼ 많다. 많다. "

 

신이 난 달봉이

봉투를 가슴에 안고 뛰어 갑니다.

그런데, 집으로 가지 않고 놀이터 쪽으로 뛰어 갑니다.

 

" 히히... 몇 개만 몰래 먹고 가야지∼ "

 

놀이터 그네에 앉습니다.

봉투 속에 손을 넣어 찹살 떡 하나를 쥡니다.

한 입에 꿀꺽 삼키니,

 

" 우∼와! 맛있다. 찹살 떡! "

 

정말 꿀 맛입니다.

또 하나를 집어 또 다시 꿀꺽 삼킵니다.

 

" 우∼와! 맛있다. 찹살 떡! "

 

한 입에 꿀꺽, 세 개 째 먹으려는데

콜록 콜록 기침소리가 들립니다.

돌아보니 언제 오셨는지 할아버지 한 분이 서 계십니다.

 

" 어? 할아버지 누구세요? "

 

달봉이, 찹살 떡 봉투를 품에 꼬옥 안고서 묻습니다.

 

" 콜록∼ 콜록∼, 아이구∼ 기침이 자꾸 나오네.

이렇게 기침이 나올 때에는 찹살 떡 하나만 먹으면 기침이 뚝! 떨어질텐데... "

 

가슴에 꼭 쥔 봉투를 슬그머니 뒤로 숨기는 달봉이입니다.

 

" 안돼요. 이건... 우리 선생님이랑 우리 동생 먹을 꺼에요. "

 

" 에구∼ 그러지 말고 한 개만 주면 안 되겠니? 따∼악 한 개만∼ "

 

" 안돼요. 절대 안돼요 "

 

그네에서 벌떡 일어서며 봉투를 품에 꼬옥 안는 달봉이입니다.

 

" 아이구∼ 그 녀석∼ 인심도 참 고약하네∼ "

 

할아버지 더딘 걸음을 옮기며 콜록 콜록 계속 기침을 하십니다.

거북이 마냥 엉금엉금 걷던 할아버지, 멈추시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 들어 큰기침을 하십니다.

 

" 에에에∼ 취! "

 

아! 그런데...

할아버지 머리 위에서 하얀 얼음 알갱이들이 쏟아집니다.

할아버지 옆으로 길다랗게 누워있던 시이소가

반짝 반짝 빛을 내며 꽁꽁 얼음이 됩니다.

 

" 어? "

 

또 다시 거북이 마냥 엉금엉금 걷는 할아버지.

이제는 가시는가 싶더니 다시 걸음을 멈추며 또 다시 큰 기침.

 

" 에에에∼ 취! "

 

또 다시 할아버지 머리 위에서 하얀 얼음 알갱이들이 쏟아집니다.

할아버지 앞 높다란 미끄럼틀이

반짝 반짝 얼음 성이 됩니다.

 

" 할아버지! 할아버지! "

 

달봉이가 할아버지를 부르며 달려갑니다.

 

" 어떻게 하신 거에요? "

 

할아버지 코가 빨간 장갑처럼 숨을 숩니다.

 

" 예끼∼ 이 녀석. 찹살 떡 하나 안 나눠주는 녀석에게는 가르쳐 줄 수 없다."

 

" 어... "

 

달봉이가 가만히 찹살 떡 봉투를 쳐다봅니다.

 

" 찹살 떡 하나 주면 가르쳐 주실꺼에요? "

 

찹살 떡 하나를 쑤욱 내밀며 덩달아 입도 쑤욱 내미는 달봉이.

 

" 그렇다면... 모를까... "

 

찹살 떡 하나를 받아든 할아버지 한 입에 꿀꺽!

 

" 아이구∼ 맛있다. 찹살 떡! "

 

" 이제 가르쳐 주세요. 어떻게 하신 거에요? "

 

" 이 녀석... 급하기도 하지..

자...어떻게 했나 하면... 이렇게 했지.. 에에에...취! "

 

달봉이 앞에서 큰기침을 하는 할아버지.

달봉이 머리 위로 얼음 알갱이들이 우박처럼 쏟아집니다.

 

" 우∼와! "

 

참으로 신기합니다.

할아버지 기침 소리에 하늘에서 얼음 알갱이들이 쏟아지다니...

 

" 또 해 봐요. 할아버지. 또 해 봐요. 네? "

 

" 또 해 볼까? "

 

" 네! "

 

" 그럴려면... 찹살 떡을 또 먹어야 될 것 같은데... "

 

" 자요. 여기요. 여기 있어요. 찹살 떡! "

 

할아버지 기침 소리에 얼음 알갱이들이 우르르 쏟아집니다.

이번에는 처음보다 훨씬 더 많은 알갱이들이 쏟아집니다.

달봉이 벌어진 입이 다물어 질 줄 모릅니다.

 

" 어떻게... 어떻게 하신 거에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어떻게 이런 걸 하실 수 있어요? "

 

" 허허..그거야 내가 겨울 할아버지니까 그렇지. "

 

" 겨울 할아버지요? "

 

5.

 

" 지금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는거냐? 이 녀석아! "

 

" 정말이라구요. 진짜로 그랬다구요."

 

" 그래서? 그래서 그 찹살 떡을 그 할아버지한테 다 줬단 말이지? "

 

" 하나 씩 하나 씩... 나중에는 하나도 남지 않았어요. "

 

" 아무래도 거짓말 같은데? "

 

삼룡이도 의심스러운 듯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 아냐∼ 정말이야. 정말이래두. 저기 봐. 미끄럼틀도 시이소도 전부 꽁꽁 얼었잖아.

눈처럼 하얗게 말야. "

 

" 알았다. 알았어. 이제 그만 들어가자. 추워서 더 있다가는 감기 걸리겠다. "

 

" 아∼ 배 아프다. "

 

갑자기 배를 감싸주는 달봉이.

 

" 배 아파? "

 

삼룡이가 묻습니다.

 

" 너무 많이 울어서 그런가 봐. 그렇죠? 선생님? "

 

" 그을-쎄? "

 

" 선생님! 나중에 또 찹살 떡 사 주실꺼죠? "

 

" 찹살 떡? 그을-세-에? "

 

한 손으로는 달봉이 손을 잡고

또 한 손으로는 삼룡이 손을 꼬옥 잡고서

풍선 마냥 볼록해진 달봉이 배를 바라봅니다.

 

" 허참 ... 요 녀석... "

 

집으로 걸어가는 길 위로

아침이 깨어나고 있습니다.

 

6.

 

어쩌면

장난꾸러기 달봉이 말처럼

겨울 할아버지가 정말로 계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깊은 밤 몰래 몰래 오셔서

에에에∼ 취! 큰기침을 하시며

아침이면 하얗게 겨울 나라를 선물하시는지도 모르지요.

 

눈이 온 듯 하얗게

얼음 알갱이마냥 꽁꽁 얼어붙은

옥길동 겨울 아침을 맞으며

에에에∼ 취!

겨울 할아버지 한 번 불러 봅니다.

 

.......... 행복한 겨울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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